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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을 즐겨라.

조산사 2008. 3. 26. 17:35

입덧을 즐겨라!”

 

 


산모와 태아를 보호하는 생명체의 작용고통 줄이기 위한 억제제 사용은 금물


임신부의 입덧은 임신 9주에서 14주까지 증가 추세를 보인다. 그 시기에 60~70%는 구역질, 30~40%는 구토를 경험한다.


며느리가 식탁 모서리를 붙들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어머니의 표정엔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예비 엄마들은 출산의 고통에 버금가는 괴로운 경험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임신 기간에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 입덧을 꼽는다. 음식을 먹은 뒤 역겨움을 느끼고, 토하거나 어지럽고 마음이 불안해지며 소화가 안 되는 고통을 겪는 탓이다. 때론 음식물을 보기만 해도 구토를 하고 심하면 유산에 이르기도 한다. 당연히 이런 고통을 피하고 싶은 여성들은 기형아를 출산토록 한 공포의 진정제 탈리도마이도효과를 보이는 입덧 억제제나 비타민 B6을 함유한 종합비타민제제 등을 복용해 입덧의 고통을 줄이려 한다. 한때는 침술과 전기자극의 원리를 결합해 만든 손목시계 모양의 팔찌가 입덧 방지제로 시장에 등장하기도 했다.

 

아기 출산의 기쁨을 맛보려는 대부분의 여성이 경험하는 입덧. 임신부의 약 80%가 겪는 입덧은 대개 임신 5, 6주에서 12주 정도에 걸쳐 나타나지만, 임신 기간 내내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임신부의 입덧은 일반적인 구토증과 달리 위가 비어 있는 이른 아침에 특히 심해 의학적으로 아침 증세’(morning sickness)라 불린다.

 

하지만 하루종일 계속되는 경우도 흔하기에 ‘NVP’(nausea and vomiting in pregnancy: 임신 기간의 구역질과 구토를 뜻함)라는 식의 명칭이 쓰이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오조증’(오조증)이라 한다. 명칭이 어떻든 입덧은 임신부들이 극복해야 할 이상증세나 질병으로 여기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입덧이 음식으로 인한 질병 발생을 막고, 발달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여러 가지 화학 물질들이 태아기형을 예방하는 자연적인 방법이라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식물성 화학물질의 독소에 대한 보호작용

 

미국 코넬대학 생물학과 폴 셔먼 교수와 대학원생 새뮤얼 플락스만 연구팀은 입덧의 구실을 규명하기 위해 수천명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입덧은 의학적으로 유익한 기능을 하는 생명체의 작용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임신부의 면역체계가 자연적으로 특정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자궁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의 위험을 예방하고, 음식에 존재하는 독소에 대한 방어 반응이 약해진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이유라고 해석했다. 예컨대 임신부들이 향과 맛이 강한 야채나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료, 고기 등을 멀리하고, 자극이 없는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산모와 아기를 위한 보호작용인 셈이다. 만일 이런 신체의 보호작용을 약물이나 기구를 이용해 강제로 차단하는 것은 어쩌면 산모가 스스로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아기의 무덤을 파는 것인지도 모른다.

 

임신부들이 피하는 야채는 식물들이 질병이나 곤충의 침탈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식물성 화학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식물성 화학물질의 영양학적 기능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반인에겐 해를 입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소량 섭취하면 황산화작용을 주도해 인체에 유익하다고 한다. 하지만 임신부에겐 사정이 다르다. 임신 첫 3개월 동안 임신부의 자궁에 있는 작은 배아의 세포들은 분화하면서 서서히 생명체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임신부들이 섭취하는 음식물은 태아의 팔이나 다리, , 중추신경계 같은 구조와 기관 시스템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만일 이때 특정 야채에 들어 있는 기형물질을 섭취한다면 태아의 정상적인 발달에 치명적인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사실은 미국의 생물학자 마지 프라핏이 임신 시기별로 태아의 독소에 대한 취약 정도를 조사한 결과와도 일치한다. 그에 따르면 임신 8주에서 12주 시기에 태아가 음식에 포함된 독소에 노출될 위험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는 바로 입덧이 가장 기승을 부리는 때이다. 당연히 임신부들은 태아가 제대로 자랄 수 있는 신체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입덧이 이런 구실을 하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보건과학원 레이첼 헉슬레야 박사팀도 입덧이 태아가 적절하게 영양을 공급받아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연적인 작용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임신 초기에 산모는 호르몬 분비가 늘어 혈당의 분해작용이 빨라진다. 따라서 태아에게 공급되는 혈당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입덧을 하면 음식 섭취가 줄어 인슐린 분비가 적어져 태아에게 적절히 당을 공급하면서 영양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입덧이 태아가 잘 자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임신부들이 입덧으로 고통받는 걸 태아 발달의 청신호로 여기는 게 옳다. 미생물이나 기생충이 살기 쉬운 육류와 생선, 가금류, 달걀 등을 거부하고 술이나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료, 향과 맛이 강한 채소를 멀리하는 건 태아가 독소에 노출될 가능성을 줄이고 태아가 적절한 영향을 공급받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덧을 경험한 여성들이 가볍게 메슥거리기만 했던 여성들보다 유산이나 저체중아, 미숙아 출산 등에 이를 가능성이 낮다는 보고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물론 입덧이 없다고 해서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하고, 심한 입덧이 건강한 아이 탄생의 보증수표인 것은 아니다. 입덧을 경험하지 않은 임산부도 얼마든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상적인 입덧의 증세를 약물로 줄이는 건 되도록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원인 밝혀야 임산부 고통 줄여


임신부는 태아에게 나타날지 모르는 치명적인 위험을 막기 위해 입덧을 한다.


이렇듯 생명체의 자연적인 방어작용을 하는 입덧의 생물학적 원인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한다면 임신일 뿐이다. 그렇지만 수정 이후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여성이 임신하면 먼저 호르몬에 변화가 일어난다. 자궁 속에 들어간 특정 조직이 수정란에 영향을 공급하기 위해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때 호르몬이 구토 중추를 자극해 입덧이 일어난다는 학설이 있다. 하지만 모체의 호르몬이 두통 같은 증세 대신 구토와 구역질을 일으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산모와 태아의 유전적 결함설을 제기하지만 입덧의 진행 과정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에 따른다면 임신 후기로 갈수록 입덧의 증세가 심해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임신 초기에 가장 고통이 따른다. 이 밖에도 아기를 낳고 싶지 않다는 잠재적 거부감, 자율신경실조가 원인이라는 설, 융모에서 나오는 물질에 의한 중독설, 위궤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 감염설 등등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어쨌거나 입덧은 임신부가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하는 고통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이로움을 안겨주는 신체작용이라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어쩌면 고통을 즐기는 게 상책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출산에 버금가는 고통을 임신부에게 무조건 감당하는 건 아무리 입덧이 이로운 행위라 해도 적절하지는 않다. 입덧에 따른 임신부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덧의 원인을 확실하게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임신부가 임신 초기 동안 고통에서 벗어나고, 태아가 독소의 위험에서 벗어나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다. 아이를 위한 임신부의 고통을 여성만의 몫으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입덧의 고통을 함께 겪을 수 없는 예비 아빠라면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아내와 태아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게 도리 아닐까.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