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산사

가정출산(자연출산), lotus 출산을 경험하며.....---------박현정 조산사

조산사 2012. 6. 4. 20:45

<가정출산, lotus 출산을 경험하며, ---------박현정 조산사>

2012. 05.29 05:00AM
전화벨이 울린다. 이ㅇㅇ산모님 아기의 아빠가 다급한 목소리로 산모의 진통이 강해졌다고 말씀하신다.  초기 가진통을 3일째 하신 산모님이시기에 나도 약간은 분주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분당으로 향했다.
 현관입구에서부터 산모님의 진통하는 신음소리가 예사롭지 않더니 내가 안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를 보시고선 엉엉 울음을 터뜨리신다.
사실 ㅇㅇ산모님은 지난달 산전방문때 가정출산을 결정하고,건강하게 순산하실 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으셨기에 아무 도움없이 남편과 둘이서 해볼까를 고민하고 계셨던 분이라서,  그때의 자신감에 차있던 모습이 교차되면서 참 안쓰러웠다.(나중에 산모님이 말씀하셨다. 혼자 출산하겠다고 생각했던건 정말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다고...ㅋ) 
 
 리아가 어떠한 자극없이 자연의 힘으로, 리아의 힘으로 세상에 나오길 원하는 엄마아빠의 의견을 존중하여 진통시작부터 3일간의 긴 출산여정동안 내진은 단 한번 조심스럽게 자궁문이 8cm가까이 다 열린상태만을 확인했을 뿐 어떠한 의료행위도 없었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거실 한쪽 벽에 세워둔 이동초음파, 산소통, NST등.. 의료장비들이 뻘쭘할 정도로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단, 최대한 호흡할수 있도록 산모님과 같이 호흡하고, 진통을 조금은 수월하게 견디실 수 있도록 진통시 골반을 눌러주고 꼬리뼈를 지압해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09:00AM
 둘라가 도착했다.
지금껏 많은 자연출산을 지켜보면서 둘라와 함께하는 출산이 얼마나 진통하는 산모님에게 정신적인 지지와 안정을 주는지를 알기 때문에 나역시도 둘라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아주 반가웠다.ㅋ
 이ㅇㅇ산모님은 둘째아이를 출산중이다. 그러나 진통은 처음이다.
첫째 아이- 요즘 여느7살 아이답지않게 아주 밝고 착해서 이런딸 낳았음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의 이쁜-를 출산할 때는 진통없이 양막이 먼저 열려 병원에서 촉진제로 유도분만 중 어떤이유인지 설명을 듣지 못한채로 진통을 겪어보지도 못하고 수술실로 이동하여 마취되기 직전까지도 수술을 거부했었으나 결국엔 수술할 수 밖에 없었던 안좋은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렇기에 나도 더더욱 자연의 힘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출산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의료적으로도 문제가 없이 건강한 출산을 돕기위한 의료인이기에 아주 적은 확률이지만 VBAC의 위험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도플러로 아기의 심음변동을 더 자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어떻게 생각해보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의료행위지만, 산모님들에게는 불안감을 증가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조산사나 의사는, 산모님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로 진통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동반자로서는 둘라를 따라갈 수가 없나보다.
 
11:00AM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들어가 호흡하며 진통한다.
진통이 5분간격으로 강하게 있고 중간중간 오렌지와 체리같은 과일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이다.
아침에 나와 둘라와 진통을 함께하면서부터 산모는 가끔 정말 못하겠다..라는 말씀은 하셨지만 더이상 울지도 않고 낮은음성으로 소리를 내며 호흡하며 진통에 굉장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07:00PM
아빠에게 온몸을 지지하여 안방과 거실을 왔다갔다 어정쩡한 자세지만 걸어다니고,또 걷다가 진통이 오면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호흡하기를  반복.
 역시 계속 누워 진통하는 것보다 운동을 하고 베란다에 나가 밖깥 정원도 보고 맑은 공기도 쐬니 산모님은 진통이 길어지고 어느덧 어두워지고 있어 지칠만도 한데, 리아가 언제나올지 예상되지 않는 상황인데도 이제는 더이상 진통을 종결시키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신듯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나도 이쯤에선 마음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오늘은 집에 못들어가고 내일도 언제갈 지 모르겠다고. 불쌍한 조산사의 남편들.ㅜㅜ
산모가 아주 잘 참아내고 집중하며 호흡을 했기에 나와 둘라와 아빠는 1-2시간씩 돌아가며 쉬면서 체력을 비축하기로 했다.
 
09:00PM
산모의 진통 양상이 바뀌었다. 호흡중 마지막에 약간의 힘을 주신다.
최대한 호흡하고 이완할 수 있도록 돕고 진통중에 회음부를 확인했다. 많은 자연출산을 경험해서 이제는 굳이 내진하지 않아도 진통중 회음부의 변화와 분비물만으로도 진행상태를 대강은 알 수 가 있는데 산모님의 진통시 산도에서 하얀 양막이 엄지손톱 만큼 보이기 시작한다.
아기의 까만 머리가 아닌, 양막이 보이는 것 만으로는 당장 출산이 되지는 않지만 오랜시간 진통을 견딘 산모에게는 아주 기쁜 소식이었다.
 
2012.05.30
00:30AM
산모는 거실에 나와 두꺼운 매트 위에 엎드려 최대한 허리를 신전시킨 상태로 진통을 견디고 있고, 아빠가 쉬는 타임이다.  오히려 진행이 되고 시간이 갈 수록 산모와 둘라와 나는 팀웍 좋은 팀을 이루어 리아를 만나는 상상을 하며 이제는 농담도 하고 진통땐 함께 호흡하고 맛사지를 하고 양막이 점점 bulging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 때 우리는 리아가 양막에 쌓여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처럼 나오면 참 좋겠다고 얘기하며 웃었다. 
이ㅇㅇ산모님은 변기에 앉아 있을 때 힘주고 호흡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셨기 때문에, 나는 소변 볼 시간도 되었고 한번더 움직이며 운동을 시킬 생각으로 화장실에 가자고 말씀드렸고 산모님도 제법 잘 걸으시면서 변기에 앉으셔서는 그 전보다 훨씬 강하게 힘도 주시고 또 호흡도 하셨다.
 
00:45AM
산모의 힘주는 소리에 아빠도 나와서 엄마의 옆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쓰러워하며 격려하고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 산모의 힘주는 양상이 변화하면서 나도 리아를 만날 마음의 준비로 산도를 지켜보고 엄마와 아기에게 집중하고 있다.
 
01:05AM
어느 순간, 양막이 주먹두개를 합친 만큼 부풀었고, 풍선처럼 부푼 양막 안에는 리아의 머리가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아.. 진짜로 양막에 쌓인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리아가 세상에 나오고 있었다. 기다렸던 감동적인 순간. 엄마에게 바로 아기를 안겨드리자 세상을 다 가진듯 엄마는 미소만 띈채 오랫동안 꽉 안아주었다. 7살짜리 첫째 아이도 태어난 동생을 보며 뽀뽀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엄마아빠가 상상하고 믿었던 모습 그대로였던 것 같았다.
 자연의 힘에 모든것을 맡겼던 산모님은 탯줄을 자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태반과 연결된 채 말라서 떨어지게 두는, 말로만 듣던 로터스분만을 하셨다. 아마도 국내최초가 아닐까???
 
엄마와 분리되지 않은채 리아는 눈은 말똥말똥 뜨고 울지도 않고 젖을 찾다가 새벽5시경 산모님이 소변을 보는 중 화장실에서 태반도 깨끗하게 분리가 되었다. 산도의 손상도 없이, 산후 출혈도 없이 건강하게 출산되어 참 감사했다.
 출산 다음날 산후 방문시에도 건강한 산모와 아기를 만날수 있었고 태반도 깨끗한 상태로 아기와의 분리 직전으로 잘 말라있었다.이번 출산에서는 엄마,아빠의 믿음이 그대로 이어져 나 또한 자연스러움의 힘과, 생명 탄생의 강한 에너지를 느꼈고, 새로운 자연출산의 장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