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출산후기

아빠들을 위한 지침서

조산사 2011. 4. 10. 22:15

교실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아빠들을 위한 manual.

 

1.     모범 기사가 됩시다.

진통이란 언제 폭풍처럼 불어 닥칠지 예상할 수 없는 법. 병원에 가는 길, 각 시간대별로 안막히거나, 덜 붐비는 길을 몇군데 대안으로 미리 알아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차피 빨리 운전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지만, 얌전히 점잖게 운전하는 것만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운전을 조심히 해도 작은 노면 요철조차 산모는 있는대로 짜증을 부립니다. 그 순간에도 거칠게 끼어들기를 하는 차가 있기에 저 눔 오늘 손 좀 봐줘야겠다 싶어 험악한 구마적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도 문득 , 나도 이제 아빤데 참아야지...’ 생각이 듭니다. 눈에 힘풀고 조용히 내렸던 창문 올립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애가 아빠 성깔 교정도 합니다.

 

2.     입수는 가급적 천천히

병원에 도착해 보니 이미 7cm 열렸답니다. 이제 머지 않았구나 싶어 즉시 입수했음에도 이게 웬 걸그로부터도 자그마치 4시간 걸렸습니다. 내가 아는 한, 4시간을 더운 물속에서 반신욕하며 버틸 수 있는 동물은 이 지구상에하마 밖에 없습니다. 산모와 아빠가 동시에 입수할 필요 없겠습니다. 사실상 아빠들은 그야말로 정말 막판의 순간에나 입수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해 놓고도 가만 되짚어 보니, 좀 모순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막상 그 순간이 되면 물에 들어갈 분위기가 아닙니다. 애기엄마는 이미 아마존의 아나콘다가 되어 욕조 전체를 장악하고 있기에 비집고 들어갈 어떠한 틈도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애기 아빠들의 욕조 내 용도라는 것은 쿠션인데, 이미 이쯤이면 그 기능성을 상실한 이후이고…)

 

3.     아기 엄마의 손톱은 미리 잘 다듬어 놓습니다.

저는 아픈 것을 잘 참습니다. 그러나 여자에게 꼬집히는 것은 아주 아픕니다.

아기 엄마한테 철저한 사전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진통이 심하게 와서, 악이 서고 내가 미울 때, 꼬집지 말고 차라리 때려라.” 미리 가격할 부위도 지정해 주고 몇차례 리허설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실전 들어가면 다 소용 없어집니다. 차라리 손톱이나 미리 말끔히 깎아줘서 그나마 자상이라도 막아보는 것이 현실적 방법 입니다.

   

4.     체중 조절 합시다.

산모가 먹고 싶다는 것 안 먹여주며 버틸 강심장 가진 아기 아빠는 없습니다.

산모 먹고, 나도 먹고. 그러나 보니 산모 찌고, 나도 찌고. 저는 8kg 쪘습니다. 그러나 출산을 하고 나면 산모는 순식간에 체중이 빠지지만, 아빠들은 그대롭니다. 출산은 아빠에게도 흔적을 남깁니다.

   

5.     It’s a mental game.

     진짜 아프긴 되게 아픈 모양 입니다. 옆에서 보기 참 딱합니다. 대신 아파줄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주고 싶습니다. 점점 정신적 공황이 찾아 옵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도 들고,

대체 얼마나 아프기에 저러나....효도르한테 암바 걸린 것 보다 설마 더 아플까....하는 궁금증도 들고....고통에

극도로 예민해진 아기 엄마가 뿜어내는 사자후와 같은 독설에 바짝 약도 오르고....그러다가 피식 웃기기도 하고좌우지간 정신세계 미묘하고 복잡해 집니다.

미리 교육 때 산모와 호흡하며 부드럽게 이완 시켜 주는 연습을 했습니다만, 실전은

양상이 다릅니다. 몸에 손 끝 하나 까닥 대지 못하게 하며 있는대로 신경질 부립니다.

준비해 간 음악도 틀지 못하게 합니다. 커피도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일단 산모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는 반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용케 참아내며

애쓰는 모습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대견 스럽고 이쁩니다.  

이 모든 상황을 반복적인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숙달 시켜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6.     끝까지 집중 합시다.

막상 아기가 나오면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이 다른 차원의 세계로 쭈욱 빨려 들어가 공간 이동할 때의 장면처럼, 아기의 모든 뒷배경이 암전 처리되고 눈에는 오로지 광채나는 아기만이 들어 옵니다. 게다가 그 연약한 생명체를 언제 한번 만져본 경험도 없는지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아기를 안은 손에 힘을 주어야 하는지 조차도 참 막연합니다. 그렇지만 빨리 정신 수습해야 합니다. 그 순간 태반 처리 등 뒷수습을 당하고 있는 산모는 나의 손길과 관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이 문어처럼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고 두 손으로 덜덜대며 아기 안고 있는데 어떻게 산모 손 잡아 줄 생각이 미치겠습니까만, 그건 내 생각이고, 아기 엄마는 그 순간 손 잡아 주지 않았던 내가 한없이 섭섭했던 모양 입니다. 아직까지도 두고 두고 칼날 선 원한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뒷끝 장난 아닙니다. 미리 대비 합시다.

 

-Namu Dad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