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출산후기

출산내내 저를 웃겨주셨던 나무엄마의 즐 출산기 ^^

조산사 2011. 3. 30. 10:33

예정일은 애초에 지났드랬습니다.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가뜩이나 급한 성격 진통이든 배를 째든 일단 애만 나왔음 하는 마음에 하루하루 지쳐갔드랬죠.

 

41주가 지나자 해탈의 경지에 다달아 갑자기 뜬금없이 컴퓨터를 정리했습니다.

비밀번호를 새로 지정하고 하드디스크를 청소했습니다.

 

아 ...

그리고 진통은 시작되었습니다.

 

애를 낳았습니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고열이 나서

입원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비밀번호 따위 기억 안납니다.

메디플라워에서 딸자식을 낳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일단 여기다가 족적하나는 남겨야지

열흘동안 컴퓨터를 켜고 말도 안되는 비번을 2837번쯤 쳐보면서 시도를 하지만 다 틀립니다.

안들어가집니다. ㅠ.ㅠ

결국 컴퓨터를 리세팅했습니다.

하드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다섯시 울면서 ;;;백지처럼 모든 자료가 날아간 새로운 컴퓨터로 부랴부랴 글 하나 올립니다.

( 애를 낳기 전후로는 머리가 하애집니다. 기억력을 요구하는 일들은 대략 애를 낳고  안정이 된 후에 하시길 바래요. 흑. )

 

애를 낳고 나서는 뭔가 성은을 입은 듯한 메디플라워 식구들의 케어 속에

그간의 출산준비 방황기와 제가 얻은 자료들을 종합해서 거나하게 출산기를 올리려 했으나

여차여차 하여 일단 간단한 소감 정도를 ....

 

 

17일 새벽 4시에 출산을 했어요.

진통은 16일 새벽1시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진통을 하자 [아이를 낳으려면 몸 보신을 자~알 해야 한다]는 신념아래

억지로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부터 애기아빠를 닥달해 꽃등심을;;구워먹었습니다.

저녁에는 진통이 10분간격으로 아찔하게 오더라구요.

이대로 못먹고 아이를 낳으려면 아침의 꽃등심으론 부족한듯 싶었습니다.

이젠 정말 아이가 나올 것 같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신사동의 단골 양곱창집으로 갔습니다;;;;;;;;;;;;;;

 

 

십분간격으로 진통이 오기 때문에 십분 사이에 열심히 곱창과 양밥을 씹고

일분 정도를 곱창구이 테이블을 잡고 끙끙거리다가 다시 시간을 재면서 허겁지겁 다시 곱창을 주워먹고

배를 안고 낑낑 대면서 다시 집으로 와서 진통을 했습니다.

고기구워 주는 종업원도 웃고, 손님도 웃고 나도 웃고.

 

언제 병원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왠지 일찍가면 진다는 생각도 들고

이따위 진통따위 못참나 자괴감도 들고 기타등등 머리 속이 카오스의 세계로 풍덩할 때 쯤

욕조에 물을 채워 들어가니 갑자기 천국이 왔습니다.

화장실이라도 쓰려고 욕조에서 일어나면 진통 쓰나미가 덜컥

나중에는 애기아빠가 병원에 가자고 재촉을 하는데

제가 좀 있다 가겠다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리고 11시가 훨씬 지나서 진통이 정신없이 옵니다.

3분? 2분? 5분?

진통은 정확한 간격으로 온다는데 정신없이 오니까 이거 가진통 아니야?

이렇게 아픈데도 애 못낳으면 죽어버려야지 점점 이성의 끈을 놓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집 욕실에서 애 낳을 거 같아서 부랴부랴 옷을 입는데

물 밖으로 나오니 너무 아파서 눈물이 뚝뚝.

메디플라워에 도착해서 (왠지 병원이란 말이 어색해서)

욕조에 물부터 받아달라고 재촉을 합니다.

그리고 수중분만실로 고고씽.

 

내가 분명히 진통전에는

병원 가기 전에 태국에서 산 수영복을 가지고 갈까, 아니다 지금 가슴 사이즈에는 작년에 산 갈리아노 수영복이

음....내가 직접 만든 린넨원피스를 입고 수중분만을 할까등등 여러계획이 있었지만

진통이 시작되면 아무생각 안납니다.

누가 내 밑을 보든 거봉찌찌를 보든 상관이 없습니다.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몸을 비비꼬고 신음하기 바쁘지 아무 생각 안납니다.

그러므로 출산준비물에 수중분만용 준비물은 존재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애 낳을 때는 이미 수치심, 부끄러움 이런거 따위 느낄 겨를이 없어요.

 

진통 초기 중기는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고통이라면

진통 후기는 문자 그대로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출산교실에서 진통을 즐겨라 어쩌구저쩌구 정환욱 원장님이 그러시는데

아..방우리 조산사님도 전화통화 때 진통을 즐기세요라고 그러셨죠.

 

애가 나올 때는 악에 받혀서 머리 속에서는

[무슨 개뿔 진통을 즐겨. 아놔 둘 다 애를 안낳아봐서 그런 망발이 나오는 거 으야아아아]하고 무한반복.

다행히 입으로는 언어를 벗어난 괴성을 지르고 있어서

원장님이나 조산사님께 망언을 직접 하지는 않았던 듯

 

정신을 놓아야, 진이 다 빠져야, 눈 앞에 형광등이 안 보여야 애를 낳을 수 있다는데

여기는 일반 분만실이 아니라 형광등도 없었고, 정신이 아득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진통이 거듭되면서 정신이 또렷해집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데 말이지요.

내가 봤던 다큐멘터리, 책 그리고 분만교실에서의 정환욱 원장님의 설명.

다 거짓말처럼 느껴집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이렇게 아프다고 안했잖아. 거짓말쟁이들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밑에 걸려서 나오려고 버둥대는 아기도 밉고

의사도 밉고 듈라도 밉고 조산사도 밉고 애기아빠도 밉고 세상도 밉고

여자가 아이를 낳아야되는 현실도 밉고 다 미울 때쯤

사는 것도 싫고, 희망도 없고 , 그냥 빨리 죽어버렸음 좋겠다 싶을 즘에 애가 미끄덩 쑤욱 나옵니다.

 

애기아빠 말로는

방우리 조산사님이 회음부 안찢어지게 맛사지를 하면서 애가 나올 때 빛의 속도로 뭔가를 했다고 하는데

나는 누가 내 거기를 만지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리고 자료 동영상에서나 보던 것처럼

아기가 울지도 않고 평화롭게 제품에 안겨서 쌔근댑니다.

태맥이 멈8출 때 까지 기다렸다가 탯줄을 자르고 아이는 제품을 떠나지 않고 세상에 나와 안정을 찾습니다.

배가 고파옵니다.

출산의 감동도 감동이지만 일단 밥은 언제 먹냐고 물어보고 아기의 체온을 느껴봅니다.

아......

저도 이제 진정한 아줌마가 되었군요.

생각보다 괜찮은 기분이었습니다. 아기를 받는 순간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는 그런 설레임이 느껴집니다.

 

저멀리 놓고 있었던 이성의 끈이 서서히 돌아옵니다.

새벽이 밝아오도록 1분1초도 곁을 떠나지 않았던 조산사님 듈라

제가 혹해서 찾아오게 만들었던 보도사진에서 봤던 얼굴과는 달리

자연출산을 알리느라 몰라보게 홀쭉해진 모습으로 후처치를 하시는 원장님

아 ...진통을 할 때 제가 감히 원망을 했다뇨.

당장 일어나서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지만 몸이 맘대로 안움직입니다.

회음부도 안찢어져서 안꼬매도 된답니다.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그 진통을 어떻게 견뎠을지 상상이 안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아프게 진통을 하는데, 이렇게예민하고 모든 것이 공포스러운데

만약에 유니폼입은 간호사들이 우르르 와서 배누르고 , 계속 밑을 휘저으면서 내진을 하고

주사기를 꼽고 ,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들 맘대로 뭔가를 계속 진행하고

아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어쨌든 애는 낳았고

식상하리만큼 애는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출산의 가장 큰 포인트는 최고의 의료서비스, 환경 이런 것보다

이 고통의 과정을 잘 아는 expert(새벽이라 적당한 한글이;;)가 따뜻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가장 힘이 되었던 것 같네요.

모든 것이 혼란 스러운 고통의 한 가운데서 길을 밝혀주고 손을 잡아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이를 낳자마자 드는 생각이

여기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일뻔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더군요.

다행이다..

 

또 낳으라면 지금 시점에서야 절대로 낳고 싶지 않지만

출산이란 과정 자체가 여성의 인생자체를 뒤바꿔놓는 커다란 사건인만큼

그 과정을 주변의 도움으로 이렇게 헤쳐왔다는데 감사하고 있습니다.

 

벌써 새벽6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