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출산후기

동이엄마의 자연스럽고 행복했던 출산 후기~~

조산사 2011. 3. 24. 17:49

출산스토리 1


나의 자연스럽고 행복했던 출산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첫째 때의 출산이야기를 해야 한다.
같은 출산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조목조목 극명한 차이를 보일 수 있는지, 완전 비교체험이니 말이다

 

첫째의 임신 40주하고도 6일, 일정에 따른 진료가 있던 날, 수순상으로 보면 그 날 진료시간에는 유도분만 이야기가 나올 터였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진료전부터 수축이 시작되어서 응급실로 안내되었고 정맥주사에 태동감지기를 달고 있다가 몇시간 지나지않아 분만실로 옮겨졌다.


아직은 진통이 심하지 않았던 그 때, 분만실로 들어서면서 관장하고 회음부 면도도 했다. 죽 늘어선 베드 곳곳에서 분만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소프롤로지 교육을 받으며 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밀려오던 긴장감...
진행이 느리다며 간호사며 앳되보이는 의사들이 여럿 와서 확인을 하고 가고 얼마지 않아 진진통이 시작되었다. 관장을 했는데도 여러번의 변의를 느끼고 어정쩡한 자세로 베드위에서 여러번씩이나 변을 보아야했다. 그나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남편 덕에 친정엄마와 나 둘이서 다행이지 생애 처음으로 정말 기분나쁘고 챙피한 경험이었다.


어느 시점이 지나고 파도치듯 진통이 오락가락했다. 절대 약은 쓰지 않고 출산하리라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어디로가고 어느 순간 무통주사 놔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자궁열린 정도가 무통주사 놓을 수 있는 시기를 지나쳐서 쓰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호흡할 수 없을 정도로의 진통이 시도때도 없이 훑고 지나갔다. 걱정스러워하는 남편의 어때?, 많이 아파? 하는 말에 대답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이 고통이 빨리 끝나주었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가족분만실에 들어서고, 분만침대에 뉩혀지고, 힘주라는 의사의 지시가 이어지고, 많은 땀을 흘리며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고, "산모 숨 쉬어요, 숨 안쉬면 아기가 위험해요" 라는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번에도 힘 못주면 수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라는 당직의의 단호하다 못해 무섭던 그 말에 정말이지 무슨 정신에 어떻게 힘을 줬던지...간호사들은 윗배를 눌러서 아이를 밀어내고...
전쟁을 치루듯 공포와 고통이 이어졌다.

 

악몽같은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났다. 기진맥진한 나처럼 아이도 숨을 못쉬어서 여러번 때리기도 하고 산소호흡기도 대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커다란 울음소리를 냈다. 간호사들과 남편의 뒷처리가 끝나고 싸개에 쌓여진 아이를 들고서 "산모님, 아기 보세요~ 체중은 ..., 키는... 남자아이고...어쩌고저쩌고..." 한다. 겨우 고개만 돌려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눈이 부신듯 눈을 꼭 감고 있다. "짱이야~" 하고 태명을 불렀더니 신기하게도 눈을 뜬다. 저산소증이라는 아이와는 그렇게 아주 잠깐 만남의 시간이 할애되었고 바로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당직의 하는 말, "마지막에 힘을 못줘서 회음부 절개가 좀 많이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 힘드실거예요" 태반이 어떻게 나왔는지 후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입원실로 옮겨지고 겨우 정신이 들었다. 딱딱한 베드에 누워있다 일어났는데 아랫도리의 통증이 참을 수 없다. 도대체 무슨짓을 한거야? 앉을 수가 없다. 손을 번갈아 짚어가며 자세를 바꾸고 또 바꾸고 걷기는 얼마나 힘들던지, 좀 걸으라는 간호사의 말에 병실 복도를 어그적어그적 기듯 걸어다녔다. 소변도 얼마나 힘들게 보아야 했던지...

 

집중치료실로 간 아이와 이틀만에 다시 만나 젖을 물릴 수 있었지만 그동안 분유를 먹었던 아이는 쉽게 엄마 젖에 적응하지 못했다. 젖 무는 것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먹이기 시작하기까지 며칠을 아이와 힘든 씨름을 해야했다. 분만할 때 힘을 잘 못 주어서 아래가 주먹만하게 부풀어있다. 항문까지 봉긋하게...어찌나 쓸리고 아프던지 가장 큰사이즈의 산모복을 입고 똥싼바지꼴을 하고 다녀야했다. 다른 산모들은 멀쩡히도 잘 다니는데 나만 왜 이모양인거야...며칠 화장실도 못가서 관장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응급실로 가란다. 아니 왠 응급실? 병원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에서 그만한 일로 응급실로 가야한다는 말이야? 아픈 몸에 분한 마음까지 들어 2주 예약되어 있던 조리원을 1주만에 나와버렸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아랫도리와 산후조리원을 나서고 얼마지 않아 시작된 젖몸살, 몸은 아프지 집에만 있어야 하지 너무나도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 때의 다이어리를 보니 100일 잔치 며칠전까지 유방마사지를 하러 다녔더라. 아픈 것도 아픈 거고 20회 넘는 마사지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어찌어찌 18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하게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100일까지만이라도 모유수유를 하리라 이를 악물고 버텼던 날들이었다.

출산스토리 2


 

첫째의 출산 후, 만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둘째의 출산이 임박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출산의 고통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첫째때는 멋모르고 했다치지만 출산과 그 이후 기나긴 고통의 기간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때마침 지인을 통해 자연출산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고 그게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출산을 한달도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을 옮기는 것을 결행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싶었다. 자연스럽고 행복한 출산이라는 말만으로 병원을 옮길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막상 옮기기는 했지만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도대체 자연출산이라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권해주시는 책도 읽고 병원에서 하는 교육도 받으면서 자연출산에 대해 조금씩 알 수 있었고 막연하나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더불어 병원에서 당사자들은 모르게 당연히 시행되고 있는 부당한 조치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던지, 나와 내 소중한 아이에 대한 일인데 얼마나 무책임하게 모든 선택권을 병원이라는 시스템에 일임했었는지 알면 알수록 가슴을 치게 만들었다.

 

둘째의 임신기간 40주하고도 2일, 수축이 시작되었다. 한밤중에 깨어나 수축시간의 간격을 재느라 밤을 꼬박 지샜다. 수축간격이 일정해지고 짧아지고,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면서 회사에 출산휴가를 낸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도착하고서 얼마지않아 오히려 수축간격이 늘어났다. 그럴수도 있다고, 진통이 좀 진행되고나서 오라셔서 챙겨갔던 짐을 맡겨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밤을 지새느라 부족한 잠을 잠깐 보충하다 진통이 와서 잠을 깼다. 낮 12시 진진통이 시작되었다. 첫째때 수축이 오고 진통이 오고 참을만큼 참다가 병원을 간게 아니고 병원가면서 수축이 시작되었던 터라 어느만큼 되었을 때 병원에 가야하는지를 도통 가늠할 수가 없다. 조산사님과 문자로 진통상황에 대해 주고 받다가 오후 6시, 집을 나서서 설렁탕집에 들러 저녁도 먹고 병원에 8시쯤 도착했다. 꽤나 진행되었으리라 예상했는데 아직 멀었다 한다. 그러더니 1시간도 안되어 4cm이 됐다. 잘하면 오늘내에 늦어도 1,2시에는 아가를 만날 수 있을거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원장님은 배가 아직 안내려와서 내일 아침이나 되야겠다는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첫째때도 10시간 조금 넘게 진통하고 낳았던 터라 조산사님 말이 더 귀에 들어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출산센타에 조산사님, 남편 나 이렇게 셋이만 오붓하게 있는 시간, 복도를 걷기도 하고 공 위에서 살짝살짝 진동을 주기도 하면서 간간이 오는 진통을 맞이했다. 진통 중에도 사진 촬영도 하고 토스트에 쨈을 토스트두께만큼 얹어먹는 남편과 웃으면서 농담도 하고, 천복으로 보이는 조산사가 되기까지 여정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밤을 지나면서 진통의 간격도 짧아지고 강도도 높아졌다. 밖에서 출산실로 들어왔다. 아로마향초도 켜주시고 푸른 불빛이 예쁜 은나노가습기도 틀어주셨다. 바깥에서는 여인의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진통은 힘들지만 편안한 마음이다.

 

새벽 3시반, 태아 머리가 뒤쪽을 향해 있어야 하는데 옆을 보고 있단다. 머리를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침대에 배를 깔고 한시간쯤은 누워있어야한단다. 출산의자에 앉아 진통을 맞다가 누워서 그것도 배를 깔고 누워서 진통을 할래니 정말 힘들었다. 정말 못참겠어서 얼마나 지났느냐고 했더니 20분 지났단다. 우~ 소리를 내면 조금 괜찮아질거라해서 우~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내 신음소리를 들으며 더 괴로와졌다. 역시 난 호흡으로만 견뎌내야하나보다. 겨우겨우 45분을 견디고 앉았다. 다시 보시더니 다행히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진통을 하면서 계속 머릿속으로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야곱의 축복' 후렴구. 너는 하나님의 사람,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가져온 CD에서 찾아봐달라 했다. 없다. 가스펠송이 담겨진 다른 CD를 찾아들었다. 원래는 힐링음악을 들으려고 준비했었는데, 진통을 하면서는 가스펠송이 듣고 싶어졌다. 듣다가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라는 곡이 나왔고 힘이 되었다. 그곡으로만 오토리버스해달라고 했다. 정말 힘들어지니 신기하게도 아버지~하며 의지하게 되었다. 내의지로 끝까지 용쓰며 버텨보려했는데 결국은 무너졌다. 용쓴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진행이 늦어지는 진통을 하면서 남편에게 했던 말, "내가 에고가 너무 강한가봐요"

 

진통을 하면서 긴 복식호흡을 하다보니 자꾸 입이 탔다. 입이 탄다고 생각되어질 무렵이면 신기하게도 조산사님이 물을 내밀었다. 내 상태를 보면 뭐가 필요한지 바로 알고 있는 듯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밤을 새워 진통을 하면서 잠깐잠깐 깜빡 잠이 들었다. 다시 진통이 오면 맞았다가 다시 졸고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 8시, 아직도 8cm이란다. 결국은 욕조에 물을 받는다. 좀 이완을 시켜야겠단다. 따뜻한 물에 남편과 함께 들어갔다.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그래도 진통은 덜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한참을 지나고 원장님이 출근하셔서 인사를 하신다. 원장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금새 툭!하더니 양수가 터졌다. 출산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타는듯한 진통, 진통이 올 때마다 이제는 힘을 줘보라 한다. 변의가 있다고 했다. 조산사님이 변의가 아니라 아기라고 했다. 여러차례의 진통과 힘주기가 이어지고 조산사님의 안내로 드디어 아이의 머리통이 만져졌다. 그리고도 몇번쯤, 이번엔 힘을 빼라한다. 하~하~하~ 아이의 머리가 쑤욱 나오고 얼마안있어 몸도 나왔다. 조산사님이 도와주셔서 아이를 가슴에 얹어주셨다. 장장 22시간의 기나긴 진통끝에 출산이었다. 둘째인데 첫째처럼 진행이 늦다며 당혹해 했던 출산이었다. 그 때의 감격이란!, 그 때의 감사함이란!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입에서는 그저 그 말만 나왔다.

 

아이를 안고 한참을 있었다. 탯줄의 맥박이 잦아질때까지. 그동안 원장님, 조산사님과 함께 기념촬영도 하고, 원장님이 축복기도도 직접 해주시고...정말 감사한 일들이 이어졌다. 탯줄의 맥박이 멈추어지고 탯줄을 잘랐다. 욕조에서 나와서 2차 출산인 태반이 나오길 기다렸다. 태반이 나오기 위한 진통도 꽤나 진했다. 한참의 진통 후에 슝~하고 태반이 퉁겨져 나가듯 나왔다. 어찌그리 시원한 느낌이 들던지...조금 있다가 나온 울컥울컥 고여있던 피도 빠져나왔다.

 

피곤과 나른함이 밀려와 잠에 빠져들었다. 두시간쯤 지났을까, 미역국이랑 밥이 나왔다. 일어나서 먼저 화장실에 갔다. 진통내내 많은 물을 마셔서인지 소변보는 것도 수월하다. ok! 회음부도 조금 찢어졌다한다. 얼얼은 하지만 걸을 수는 있네. 이것도 ok! 항문도 거의 원상태다. 이것도 oook! wow! perfect!

 

출산하고 두시간 밖에 안지났는데 이렇게 제대로 서서 걷고 동그랑 땡 의자에 앉아 밥도 먹고...이게 가능했었단 말야???
아이와 한 침대에 같이 누워자고 젖도 먹이고...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몇번 낑낑거리더니 잘도 찾아서 문다. 이것도 신기하네~~어떻게 이렇게 같은 출산이 다를 수 있을까? 남편도 나도 무척 흥분했다. 같은 일을 같이 겪었기때문인지 우리 둘 다 선물처럼 찾아온 이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남편과 내가 미리 써 간 아이에게의 편지도 읽어주었다. 첫째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모든게 축복이고 감사하다

 

출산후 4주, 밤낮이 아직 없는 아이의 수유로 수면이 부족하고 장시간의 진통으로 아직 몸이 회복중인 것을 빼면 아주 양호하다. 젖몸살이 한차례 지나기는 했지만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아직은 산후도우미분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차차 일상생활로의 적응이 시작될거다.

 

분만 vs 출산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출산은 말 그대로의 출산이 아니라 분만이라한다. 나중에 보니 자연분만이라고 되어있기는 하더라.
그럼 분만과 출산은 어떻게 다른거냐? 분만은 병원시스템에 의해 조절되는 거고 자연출산은 흐름에 맡기는 거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병원에서 산모의 90%에게 피토신이라는 자궁수축제가 투여되어진다고 한다.


보통은 2박3일이고 일주일을 진통하는 이도 있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이걸 어떻게 기다려주냐는 말이다. 그래서 개발된 게 자궁수축제였겠지.
시스템은 시스템이라 쳐도 자연에 맡겨져야 할 출산이 약물에 의해 조절되고 있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나같이 느린 진행의 산모들도 수축제만 투여하면 금새 분만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첫째는 자궁수축제의 덕을 톡톡히 본셈이다. 2박3일 끌 일을 11시간만에 끝냈으니...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면 빈정이 상해진다.

 

자궁수축제의 수순이 격렬한 진통, 산모의 호흡곤란, 태아의 저산소증, 제왕절개 라 했다.
나도 그 수순을 따라 갔고 그나마 다행히도 수술만은 피할 수 있었다. 아이의 집중치료를, 태어나 처음 겪은 곳에서의 공포와 낯설음을 생각하면 정말 분하고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첫째에게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엄마의 무지로 안해도 되는 나쁜 경험을 했구나.
회음부 절개도 나중에 궁금해서 살펴보니 4cm도 넘는 거 같더라. 지금도 몸이 힘들다 싶으면 가끔씩 쑥쑥 아려온다. 제대로 열리지도 않은 것을 꺼내려고 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
힘주기가 잘못되어 꽃봉오리처럼 봉긋 튀어나왔던 항문은, 통증의 공포에 변의에도 못보고 있다가 관장도 여러번 했어야 했다.

 

젖몸살은 또 어떤가? 이것도 요번에야 안 사실인데 초유의 수유가 잘 되지 않았을 때 젖몸살이 온다고 한다. 첫째 때 집중치료 중인 아이와의 첫수유가 이틀 후였으니 원만한 수유가 될리가 만무했고 안그래도 젖량이 많았던 내가 젖몸살에 걸리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며칠은 매일, 하루걸러 하루, 일주일에 한번, 그러다가도 심해지면 또 며칠은 매일...이렇게 아픈 가슴 부여잡고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마사지를 받으러 다녔다.

 

엄마의 편안한 산후조리를 위해 산후조리원을 찾는 것도 아이에겐 얼마나 낯선 경험이었을지...
둘째낳고 집에서 산후도우미분과 함께 하는 산후조리를 하다 보니 출산 후 집에서 엄마와 함께 적응해나가는 게 아이에게 얼마나 편안할지, 밤새 보살피는게 엄마에겐 좀 힘들겠지만 아이에겐 얼마나 포근할지를 생각하면 그 또한 첫째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진다.
유독 엄마 곁에 붙어있으려는 첫째를 보며 참 유난도 하다 했었는데 아마도 그런 경험이 일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싸아 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하다


어떻게 그렇게 모를수가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수동적일 수 있었을까
그나마 둘째 출산때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남편이랑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걸, 10년만 젊으면 하나 더 낳을텐데 그랬다.
제발, 나같은 무지몽매한 산모들이 없어졌으면, 출산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갖고 시스템에 요구하는 산모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